붉게 채 썬 소고기, 노른자를 올려 색색의 고명을 곁들여 소담히 내어낸 모습이 황홀하다. 한 입 넣는 순간 혀끝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고소한 감칠맛. 씹을수록 혀에 부드럽게 감기는 소고기의 육향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재래 된장 소스의 익숙한 듯 새로운 풍미. 파 · 마늘은 입안을 개운하게, 또 진한 향긋함으로 깔끔하게 포인트를 준다. 육회, 너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니?

육회肉膾,
언제 그리고 왜 먹었을까?

불을 활용하기 전 인류가 먹었던 가장 원시적인 음식은 바로 날고기일 테다. 그러나 이를 회의 기원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현재 우리가 먹는 육회의 형태는 요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먹기 좋게 편 모양으로 썰거나 채 쳐서 양념을 곁들여, 혹은 무쳐 먹는 형태. 이를 비로소 회라고 정의해보자.그렇다면 이 육회, 도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먹기 시작했을까?

육회를 플레이팅하는 모습
고기를 좋아하는 맥족,
날것을 좋아하는 백제인,
육회를 먹는 조선인은 야만인?

육회에 대한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선 한국 민족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고대 한민족의 종족명인 ‘예맥족’ 중 ‘맥족’은 고기 다루는 솜씨가 익숙해 예로부터 고기 음식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백제로 넘어와, 백제인은 화식을 즐겨 먹지 않고 생식을 즐긴다는 음식 문화가 남아있다. 수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수서> 권 81 중 동이열전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사람은 화식 (불에 익한 음식)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확인할 수 있다.

플레이팅 된 육회

한국에서 명확하게 육회라는 음식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1592~1598) 시기이다.1600년경 남겨진 어간야담이라는 저서에는 안타깝게도 육회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사건이 드러나는데, 바로 명나라 군사가 조선 사람이 육회를 먹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는 삶거나 구워서 먹는데 한국은 날것 그대로 먹으니 야만인”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육회는 정말 ‘야만인’의 음식일까? 위에서 언급했듯 인류가 먹었던 가장 원시적인 음식은 날고기였으리라 추정할 수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명나라 군사는 조선인이 먹던 육회를 ‘야만인이나 먹던 것’으로 깎아내렸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정작 중국(구 명나라)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육회를 먹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진순절도
부산진순절도, 임진왜란 당시의 왜병과의 최초의 전투 / 공자

논어 상론의 향당에는 공자의 생활 습관을 설명하며 ‘찧은 쌀밥과 가늘게 채 썬 회를 즐겼다(食不厭精 膾不厭細)’고 기록했다. 논어가 저술된 시기가 기원전 약 400년, 춘추시대 말에서 전국시대 초로 추측되며 더불어 삼국, 조선의 문화에는 언제나 밀접히 있던 중국의 문화 또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명나라 군사의 비하는 실제적으로 근거가 없는 비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한국의 육회로 돌아간다면, 조선에서는 유교를 숭배한다는 숭유주의에 따라 공자가 회를 먹었으니 육회를 먹는다는 사실에 큰 거리낌이 없었겠다. 당시 농사를 위한 소를 보호하기 위해 고려 시대 불교의 영향으로 내려오던 우금령은 계속되었으나, 종묘와 같은 큰 제례의식에서는 여전히 고기를 활요한 음식을 제수로 사용했고 육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최초의 ‘육회’는 ···

고기 육, 회 회 한자

그렇다면 요리로서 ‘육회’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육회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논문에서는 255년 전인 1766년, 유중림이 산림경제를 토대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실용적인 정보를 적은 ‘증보산림경제’라는 책에서 드러난 ‘저피수정회법’을 최초로 본다. 그러나 이 경우 현대의 일반적인 소고기 육회를 이르는 것이 아닌 돼지 껍데기를 살짝 익혀 굳혀 먹는, 현대의 편육과 가까운 형태로 먹는 음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도마 위 생고기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육회, 즉 소고기 중에서도 지방이 많지 않은 붉은 우둔살 & 홍두깨살을 썰어 날것으로 먹는 형태의 음식은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저서에서 등장한다. 해당 저서는 궁중의궤로, 조선 시대 궁중의 일상식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의궤이다. 즉, 육회라는 음식이 단순히 일상 음식이 아닌 궁중에서 먹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선 우리가 쓰는 용어인 ‘육회’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각색어육회, 육회, 육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후로도 육회는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현대 이전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31회, 근대 (일제강점기) 문헌에는 12회로 총 43회 등장한다. 그 종류도 다양해 살코기뿐 아니라 간·천엽 등 내장을 활용하기도 하며, 간장 / 파 / 마늘 / 참기름 / 깨소금 / 고추장 / 초고추장 등 다양한 향신료와 장을 사용해 조리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삶에 가까이,
더 유쾌하게 미식영역으로

그렇다면 궁중 연회, 제례 의식 등에 쓰이던 육회가 현재 사람들의 일상 속에 밀접히 다가오기까지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서울과 진주는 20세기 초반, 전국에서 가장 먼저 공식적인 도살장 & 우시장을 운영하던 지역이었다. 1914년에만 해도 영세한 소규모의 비공식 우시장만 있던 것과 달리, 1922년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전국 760개의 우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우시장의 설치와 도축의 시행은 신선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소고기 육회를 먹을 수 있던 기회를 그 이전에 비해 증가시켰다. 육회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배경이다.

플레이팅 된 육회

현재에 이르러, 육회는 향토음식으로 또 생활에 밀접한 대중 음식으로 큰 사랑을 받는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는 간, 천엽, 양을 날것으로 소금에 찍어 먹는 갑회가 있고 충청도 지역은 소고기 우둔살을 가늘게 채 썰어 간장에 무친 후 잣가루를 뿌려 먹는다. 광장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에서도 육회는 한국인은 물론 관광을 오는 외국인에게도 특징적인 음식이며, 다양한 육회 프랜차이즈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정육식당 & 고깃집에서도 육회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그런데도 육회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도 갈린다. 날고기를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과거 명나라 군사의 비방처럼 ‘야만인’이라는 인식이 일부의 기저에 깔려있다. 뿐만 아니라 육회의 전승 자체가 불명확하다며, 근본이 없는 음식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육회의 역사를 살짝이나마 톺아본다면 한국의 역사가 녹아있는 향토음식으로, 또 우리네 삶에 밀접한 대중의 음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오해 없이 육회가 인식된다면 보다 유쾌한 미식의 영역까지 닿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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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우리나라 육회의 시대별 조리학적 고찰, 박경란, 한국생활과학회지, 2019
  • 육회 조리법의 역사적 고찰, 김태홍, 상명대학교 가정교육학과, 1999
  • 문학을 통한 음식 이야기 중 <이야기로 먹는 백제의 맛과 멋, ‘무령왕의 밥상’>,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 야구는 ‘6회’부터 보는 맛 · · · 고기는 ‘육회’부터 먹는 맛, 이우석, 문화일보, 2021
  • 공자님도 즐기던 음식 육회, KBS, 2012